남 얘기 같지 않은 이야기
“사장님, 이 집 마음에 들어요. 다른 사람한테 계약 뺏기기 전에 ‘가계약금’ 걸어둘게요.”
“네, 그럼 100만 원 계좌로 보내주세요. 계약금 들어왔으니 이 집은 잡아놓은 거예요.”
“근데, 다른 집을 보니까 더 좋은 데가 있네요. 죄송한데 가계약금 돌려주세요.”
“무슨 소리예요? 가계약금은 계약을 깨는 조건으로 포기하는 돈인데요!”
마음에 드는 집이나 물건을 발견했을 때,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 봐 일단 소액의 '가계약금'부터 걸어두는 경우가 많습니다. 하지만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계약을 포기하려고 하면, 집주인이나 판매자는 가계약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분쟁이 발생하곤 합니다.
과연 가계약금은 무조건 돌려받지 못하는 돈일까요? 오늘은 가계약금 반환에 대한 실제 법원 판례를 통해,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상식과 권리를 살펴볼게요.
사연의 주인공들
이 사건의 주인공은 마음에 드는 오피스텔을 발견하고 임대인에게 ‘가계약금’ 100만 원을 송금한 A씨입니다. A씨는 임대인에게 “본계약은 내일 다시 연락해서 진행하겠다”고 말했습니다. 하지만 다음 날 A씨는 더 좋은 조건의 다른 오피스텔을 발견했고, 임대인에게 가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.
임대인은 “가계약금을 넣은 건 계약을 하겠다는 뜻이니, 계약을 포기하면 가계약금은 당연히 돌려줄 수 없다”고 주장했습니다. 이에 A씨는 임대인을 상대로 가계약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.
(실제 사례 참고: 2017년 대법원 2017다XXXX 판결)
법의 눈으로 본 이 사건
법원은 이 사건의 가장 큰 쟁점을 '가계약금이 어떤 성격의 돈인가'로 보았습니다.
- 가계약금은 '계약금'이 아니다: 법원은 가계약금이 정식 계약금이 되려면 '매매 목적물', '매매 대금', '중도금/잔금 지급 시기' 등 핵심 내용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. A씨의 경우, 단순히 집을 '찜'해두기 위해 돈을 보냈을 뿐, 구체적인 계약 조건에 대한 합의는 없었으므로 이는 정식 계약이 아닌 '임시적인 계약'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.
- 불공정한 조건은 무효: 법원은 가계약금을 계약금으로 간주하여 무조건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므로, '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'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.
결론적으로, 법원은 "임시적인 계약금인 가계약금은 본계약의 핵심 내용에 대한 합의가 없었으므로, 임차인이 계약을 포기하더라도 돌려주는 것이 원칙"이라고 판결하며 A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.
이제는 알고 있어야 할 현실
- 가계약금은 '보관금'일 가능성이 높아요: 정식 계약서 작성 없이 단순히 집을 봐두기 위해 보낸 돈은 법적으로 '계약금'이 아니라 '일시 보관금'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.
- '계약금'이라면 포기해야 해요: 가계약금을 보냈을 때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합의했다면, 이는 이미 계약이 성립된 것으로 보아 계약을 포기하면 가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없습니다.
법이 알려주는 현명한 대처법
- 구체적으로 합의하고 증거 남기기: 가계약금을 보낼 때, "이 돈은 임시 보관금이며,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즉시 반환한다"와 같이 구체적인 내용을 문자로 남겨두세요.
- 계약의 핵심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세요: '가계약'이라도 계약금액, 잔금 지급일 등 주요 내용이 확정되었다면 정식 계약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습니다.
기억합시다!
가계약금은 그 이름 때문에 '계약금'과 혼동하기 쉽지만, 법적 효력은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. 큰돈을 보내기 전, 반드시 그 돈의 목적과 반환 조건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하고 기록을 남겨두세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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